테 네츠 강의 1

보수적 인 성서 협회테 네츠 강의 1

성경

  1. 성경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성한 영감을받은 사람들이 성경을 썼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를위한 하나님을 오류없이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위한 인간의 주된 지침이되어야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는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이야기라는 하나의 주요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성경이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자신이 신성한 계시의 초점 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을 발견합니다.

출애굽기 24:4; 신명기 4:1-2; 17:19; 시편 19:7-10; 이사야 34:16; 40:8; 예레미야 15:16; 마태복음 5:17-18; 22:29; 요한복음 5:39; 16:13-15; 17:17; 사도행전 2:16 이하; 17:11; 로마서 15:4; 고린도전서 13:10; 16:25-26; 히브리서 1:1-2; 4:12; 베드로전서 1:25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성경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에 대한 믿음의 기초를 도출 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은 우리가 교리를 형성 할 때 믿을 수있는 유일한 진정한 출처입니다.

이제 간단 해 보일 수 있습니다. 경전은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기록이며 성경이라는 한 출처에서 나온 것이어야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의 유일한 근원이라는 믿음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성경 원천 인 성경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성경을 구성하는 책이 66 권인 것 같아요'와 같은 답을 얻을 수있을 것입니다. 가톨릭 신부에게 물어 보면 그는 성경에 73 권의 책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66권이라고 믿습니다.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에 66권의 책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이 책이나 저술이 왜 그렇게 독특하게 만드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짧은 대답은, 그들은 하나님이 그의 창조물에 글을 쓰고 선포하도록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신 것들을 나타냅니다.

더 좋고 완전한 대답은 신약과 구약을 따로 다룹니다. 신약은 예수의 목격자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분의 가르침, 그분의 삶, 그리고 그 정보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예수님의 인격, 그가하신 일,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서 의미하는 바를 보여줍니다.

구약의 책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글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신약과 함께 가르쳐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계획을 읽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과 글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기록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계시하기로 선택한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성서를 신뢰할 만하고 권위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짧은 대답은 하나님이 말씀 하셨다는 것입니다.

질문에 대한보다 완전하고 완전한 대답은 하나님이 그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이미지에 부응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그의 성격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 전체에서 봅니다.

산상 수훈에서 (마태 복음 5:48),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가 완전 하듯이 완전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처럼되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걷는'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성품으로 삶을 살아야합니다. 구약의 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와 관련된 방식의 본질은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 께서 고대에 그분의 백성들의 공동체에서 그분의 성품이 어떻게 나타나기를 기대 하셨는지 알려줍니다.

문화, 언어, 역사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서의 고대 법칙이 하느님의 성품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방법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삶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개념으로 시작하면 이것이 우리 삶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야기와 법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 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관계를 맺고 그가 충실 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을 통치 할 왕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언급하고 이야기로 녹음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모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그에게 율법을주었습니다. 그는 모세를 왕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를받을 수있는 법과 방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집행하는 것은 모세의 몫이 아니 었습니다. 그것은 지역 사회의 사람들에게 달려있었습니다. 하나님 께서 먼저 사울을 세우신 다음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직접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바로 그 이후였습니다. 하나님 께서 자신의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선택하신 방법은 성경에만있는 그분의 경전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에게는 이것을 역사적 맥락에 놓고 이것이 어떻게 그분의 교회를 구성하는 특성의 일부인지 보는 것이 도움이됩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의 권위가 의미하는 것은 성경이 인간이 만든 그룹이 아니라 권위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기 시작하는 데는 교회가 시작된 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스라엘의 길을갔습니다.

어떤면에서 이것은 필요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사도들은 예수에 대해 가르쳐야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리스도의 몸인 서로의 관계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진실하고 옳지 않은 것을 말할 필요가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신약 성경의 여러 글자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런 다음이 편지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책임이있는 모든 세대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목격 한 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고했던 사람처럼 잠시 후 기록되지 않은 것은 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약간 변경되거나 추가되거나 손실 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견지명으로 그분은 사람들과 사도들,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몇몇 사람들에게 그분이 가르치신대로 살았던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을 기록하도록 촉구하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가톨릭 교회 나 다른 교회 나 교단에서 나오는 가르침이나 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과거에 일부 교회는 왕과의 관계를 구축하고, 법률 제정에 영향을 미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번 진리를 타협함으로써 권력을 얻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런 종류의 권력은 기독교인들과이 협회에서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권위와 교회 안에서 사람들에게 주어진 능력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의 사역자로서 특별한 권한이 우리에게 위임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이끌고 가르쳐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일을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유일한 권위와 그분의 성경에 나오는 관리 아래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이 성경과 모순 될 경우 누구든지 도전 할 수 있음을 알고 기대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교회들이 모여서 정치 나 교리를 결정할 때하는 일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에 관한 것이지 교회가 무엇을 말하거나 어떤 교사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가 아닙니다. 한 무리의 교회가 모여서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고 말하거나 마리아가 처녀가 아니었다거나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그것은 우리에게 구속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성경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성경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마지막으로 전통이 성경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반복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혁자들이 한 일 중 하나는 교회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항상 해오던 방식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는 과거에했던 방식이나 과거에 사람들이 말했던 방식이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는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예배에서 우리가하는 일은 전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경에 의해 지시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모든 전통을 버려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권위는 전통이 아니라 성경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가르치는 방식으로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통 및 기타 출처 (책, 사람, 대중적인 가르침)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나 글이 말한 것을 말함으로써 주제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할 수 있으며, 그 후 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교회의 전통이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전통을 권위있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성경과 하나님의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하며 사람이나 그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경이 최종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야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ko_KRKorean